유동근목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ENMposted Oct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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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창12:10-20
설교일자 2009-10-18
설교자 유동근목사
영상 주소 http://media.busanenm.or.kr/busanenm/mes...1018_y.mp4


그럼에도 불구하고(창12:10-20)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간혹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서  믿음 없이 행동하거나, 세상 사람들 앞에 거짓말을 하거나 비겁하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우리 자신을 보고 우리자신을 정죄할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이런 연약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실까?
-하나님이 이런 나를 외면하지는 않으실까?
나를 버리지는 않으실까? 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세 자녀를 잘 키운 한 여자 분이 있었다.
하루는 심방을 온 목사님이 이 여자 분에게 “세 자녀 중에 누구를 가장 사랑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 분이 웃으며 대답했다.
“막내가 병들었을 때는 막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둘째가 집을 떠나 방황했을 때는 둘째를 가장 사랑했다.
그리고 큰 아이가 학교성적과 이성문제로 괴로워할 때, 그때는 큰아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다.
자녀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끌어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사자는 병든 새끼를 절벽에서 던져버린다.
독수리는 상처 입은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부모는 항상 자녀와 고통을 함께 나눈다.
그런데 이보다도 한 차원 높은 사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49:15에서도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의 올무에 빠져 고통당할 때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연약과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병든 자, 낙심한 자, 고통당하는 자, 방황하는 자를 불러 사랑으로 치유해주시는 줄로 믿는다.
그렇다.
하나님은 지금도 연약하고 형편없는 저와 여러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 주시는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창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모든 민족의 머리로 높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복덩이가 되게 해주겠다고 아브람을 축복하셨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그리고 아브람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도착했을 때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하고 예배를 드렸다.(12:7,8)
-7에서는“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8절에서는“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아브람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도착했을 때 아브람은 잔뜩 기대하고 꿈에 부풀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이르렀을 때에 아브람이 만난 것은 심한 기근이었다.(지금으로 말하면 경제적 어려움이다.)
10을 보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고 그리고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갔지만 심한 기근을 만났다.
아브람은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기대가 꺾이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을 심한 기근 속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의 머리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심한 기근만 바라보았다.
기근만 바라본 아브람은 기근이라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 땅은 나일 강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너무 좋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람이 애굽을 선택한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탁월한 선택이다.
인간적으로는 아브람의 결정이 백번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신앙적인 결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히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인 줄 믿어야 할지니라.”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의 애굽으로 내려간 결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내린 아브람의 연약한 모습이다.
마14장22 이후를 보면
제자들은 바다위에서 바람과 파도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제자들이 그 험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예수님! 저도 예수님처럼 이 험한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대로 응답해 주는 분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셨다.(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험한 파도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험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바다에 빠졌다.
이것이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베드로와 아브람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과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구해 주셨다.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도 사랑해 주시고 구해 주실 줄로 믿는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나?
약속을 지키며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으로
아브람은 기근을 만나자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등지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영적으로 아브람이 하나님과 멀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애굽은 하나님 없는 세상을 상징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떠나 인간적인 도움과 수단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근을 만난 아브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등진 아브람은 애굽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만났다.당시 애굽 인들은 피부가 거무튀튀했다.
그런데 사래는 셈족이기 때문에 피부가 하했다.
가뜩이나 아리따운 사래였는데 거무튀튀한 사람들 속에 피부까지 하야니까 애굽 사람들 눈에 더 띄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며 애굽에서는 예쁜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삼기위해 살인쯤은 예사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아리따운 아내 사래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아브람은 또 다시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12,13(123p) 람은 아내에게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원컨대”라는 단어는 “제발”이라는 뜻이다.
아브람이 아내에게 “제발, please 누이라고 하자”고 애원한 것이다.
아내를 보호하려고 누이라고 하자고 제안 한 것 아니다.  기 생명보존하려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했던 제안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겼다.

-14,15절을 보자.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게 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라나 거북이는 위험에 처하면 목이 쏙 들어갑니다.
자라나 거북이가 두려움에 빠져 목을 집어넣고 있는 동안에는 1센티미터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딤후1:7에서는“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단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줘서 약속을 따라 사는 삶을 스톱시키고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아브람은 아내를 뺏겼고
-베드로는 바다에 빠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경을 긍적적으로 보게 한다.
가나안 땅의 열두 정탐꾼 중에 열 명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장대한 족속이고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보고 했다.
그러나 두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의 장대한 족속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 왔지만 왜 보고한 내용이 달랐나?
왜 열사람은 두려워했고 왜 두 사람은 긍적적이었나?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가나안 땅을 보았고 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없이 가나안 땅을 보았기 때문이다.

골리앗의 큰 덩치에 이스라엘은 모두 두려워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의 큰 것이 돌에 더 잘 맞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면으로 보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역사가 일어나게 할 것이다. 히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믿음대로 역사해 주실 줄로 믿는다. 하나님을 등지고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애굽에 내려온 아브람은 아브람이 아내를 주고 돈방석에 앉았다. -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람에게 있어 축복도 아니고 행복도 아닌 가시방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등지고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있는 아브람의 고통을 보시고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다.
창12장3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신 약속을 기억하셨다.
그리고 아내 사래를 건져내시기 위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다.(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2:3에서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에서 “저주”이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은 ‘너를 감소시키고 낮게 여기는 자에게는’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저주하리니”에서 “저주”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은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징계 조치와 형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이 방법으로 징계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문제는 아브람이 야기 시켰다.
바로는 사래가 진짜 아브람의 누이인줄 알고 아내로 맞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일방적으로 아브람의 편이 되신 것이다. 큰 재앙을 만나 바로는 아브람에게 19절에서“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이렇게 말했다. 사실 바로가 아브람의 거짓말 때문에 당한 어려운 일들을 생각했다면 아브람과 사래를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에게 너무나 큰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에 바로는 너무 두려워 아브람에게 “사래를 데리고 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불신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해주신 약속도 지켜 주실 줄로 믿는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도 아브람을 사랑해 주신 그 사랑으로 사랑해 주실 줄로 믿는다.
-저와 여러분을 머리가 되고 높여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는다.
-저와 여러분을 복덩어리로 사용해 주실 줄로 믿는다.(가정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사회에서)
딤후2;13에서도 “우리는 미쁨이 없을 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있고, 강을 건널 때도 있고, 불 가운데로 행할 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롬8:33-38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 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저와 여러분의 형편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실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의 자리에서도 인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근 속에 있나?
-경제적인 기근
-건강의 기근
-관계의 기근 등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부르심 속에 있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을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도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실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