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성취: 성령이 오셨습니다.(행2:1-13)
부활하셔서만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공적인 삶을 사실 때도 예수님의 가르침의 주제는 한결같이 하나님나라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받고 현재 있는 곳에서부터 땅끝까지 증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진 제자들은 너무나 기뻤다.
눅 24:52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늘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전도할 권능을 주시도록 기도했다.
마음을 합하여 오로지하여 성령이 오시도록 기도에 힘을 썼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오순절 새벽에 성령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모습으로 임하셨는가?
첫째로 성령은 바람으로 임했다.
행 2:2절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했다.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중에 하늘로부터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태풍과 같이 강력하게 돌진하는 바람 소리를 들은 것이다.
창1:2에서 “수면 위에 운행한 하나님의 영”은 “숨, 바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숨과 바람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3절 이후에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성령의 바람은 바로 ‘창조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을 기다리면서 기도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권능을 주셔서 내면을 새롭게 창조해 주셨다.
두려워 떨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권세를 주셨다.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는 변했다.
위협 속에서 멀찍이 주님을 따르며, 어린 여종의 추궁에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 통곡한 베드로가 변했다.
목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전도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라는 새는 자신의 긴 날개 때문에 사람들에게 바보새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폭풍이 몰려 올 때 알바트로스는 자신의 능력을 한 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6일 동안 한번의 날개 짓도 하지 않고 하늘을 날수 있었고
두 달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능력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강력한 바람이 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권능 있는 증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비상하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고, 이 세상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둘째로 성령은 불로 임했다.
행 2:3에서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했다.
불의 혀가 갈라져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고 했다.
성령이 불로 임해서 그 불꽃이 스스로 갈라지면서 120명의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이다.
레위기를 보면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제사장들은 이 불을 꺼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벧전 2:9)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제사장들이다.
하나님의 불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제사장 된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의 불로 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 된 우리가 성령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잘 관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불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나?
불은 어떤 것을 움직이는 힘과 에너지다.
제사장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힘과 에너지의 근원인 성령의 불로 매일매일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 갈수 있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살았던 부부가 결혼해서 어떻게 다른 배우자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겠나?
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말씀을 따라 양육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나?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부모님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하며 어떻게 부모님에게 순종할 수 있겠나?
직장에서 나를 무시하고 힘들게 하는 동료와 상사를 어떻게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있겠나?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나?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는 이 세대를 어떻게 이겨내며 동성애와 같은 세속적인 거친 물결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겠나?
내 힘과 결심만으로는 안된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불이 아니라 혈기의 불이 나오는 것이다.
힘과 에너지의 근원인 성령의 불이 내게 임할 때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며 있는 곳에서 참된 예배자로 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불에서 나오는 힘과 에너지로 사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자기 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주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죽게 된다. (레 10:1,2)
우리는 다른 불로 제사를 드려도 안되지만, 내 성정의 불, 혈기의 불, 죄의 불로 하나님께서 최초로 주신 성령의 불을 꺼뜨려도 안 되는 것이다.
성령의 불이 아닌 내 힘과 내 열정과 내 노력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탈진하고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영이 죽고 마는 것이다.
빌 3:3에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며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했다.
성령의 불이 주는 힘과 에너지로 주님과 공동체를 섬기고,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진정한 할례자의 삶인 것이다.
그러면 성령충만의 결과로 표현된 결과는 무엇인가?
행 2:4-11에서“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했다.
120명 성도들의 성령 충만의 결과는 방언과 전도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방언은 전도를 위해서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유대 남자들은 일년에 3번,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반드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대개 유대 남자들은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왔다가 50일 후에 있는 오순절을 함께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평상시에 5만 명이 거주하는 예루살렘에 백만 명 이상이 모였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짐작한다.
그런데 지금 성령의 충만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이 100만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있다.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을 때 이들은 100만 명의 조롱과 멸시에 위축되지 않고 대중 앞에 나가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었다.
성령은 증인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다.
요즘 기독교가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전도 좀 해보려고 하면 뉴스에 기독교가 욕먹을 만한 사건들이 터져서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전도하게 하는 능력을 성령이 주시는 것이다.
스데반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순교할 힘을 얻었다.
핍박 받고 흩어지는 성도들도 위축되지 않고 성령으로 담대하게 사마리아와 이방에 복음을 전했다.
이처럼 성령은 증인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며 실제적인 힘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복음이 필요한 곳에 이끌고 들어가는 엔진이다.
유대인 100만 명 속에서 기도하던 120명은 겨자씨 한 알이 커져서 공중의 새를 깃들이게 하고, 보이지 않는 적은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120명의 미미하게 보이는 증인들은 예루살렘을 넘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도록 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하신 성령의 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다.
재림하실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우리 세계로 선교회 300명도 부산 360만 명에 묻혀 있는 보이지 않는 미미한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충만하기만 하면 부산을 복음화 시키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우리가 성령에 충만할 때 28장에서 멈춰진 사도행전을 다시 29장으로 써내려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셔서 각 사람 위에 충만하게 임했고, 교회 위해 충만하게 임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온 선물이다.
준비된 자에게 전적인 선물로 와 주시는 분이다.
성령은 기도로 준비된 자에게 바람으로 오셔서 비상하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은 기도로 준비된 자에게 불로 오셔서 참된 예배자로 세워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기도의 자리에 있나?
바람과 불 같은 성령의 권능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내 힘으로 살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축복한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력한 바람과 불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개인기도
한 주간 유혹을 떨치고 기도의 자리를 선택하고 사수해서 성령 충만하여 비상하는 인생되게 하소서.
기도에 깨어 힘써 드리므로 불로 오시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참된 예배자의 삶을 한 주간 살아갈 힘을 얻게 하소서.